계몽시대 예술사가들에 의해 미술사내에서 화석처럼 여겨지던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가인 뒤러(Albrecht Dürer)”의 초기작 “묵시록 연작 (Apocalypse with Pictures,1498)”을 독일 다름슈타트에 위치한 헤센주립 자연사박물관의 특별전(2016)에서 처음으로 마주하였을 때, 유년시절 백과사전의 파편화된 색인을 통하여 퍼즐 맞추듯 세계를 이해하던 나는, 백과사전 속 흑백사진으로만 보던 불을 직접 만진 것처럼, 청년 뒤러의 열기에 심장을 댄 듯 놀랐다. 또한 직업인으로서의 작가의 입장에 더하여 나 스스로가 여전히 르네상스적 인문주의에 경도 되어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십수 년 전부터 급속히 진행된 세계화로 인해 새로운 중세의 도래를 움베르트 에코가 주장했던 것이 떠오르며, 수많은 나만의 각주들이 그 현장에서 그림아래로 주르륵 달리는 기분이었다. 오랜 전설이 되어 화석처럼 박물관에만 존재하는 “인본주의”와 “진리”라는 타이틀과 탐사의 열기가 사그라진 황무지의 달처럼 효용가치를 상실한 “절대 이성”등도 당대의 우리가 너무 많은 정보의 엽맥을 쫓다가 목적지를 상실하여 빛을 잃은 듯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내가 속한 원의 안과 그 원의 바깥만을 생각하면 되는 서양인들 속에서 세계사에서 타자로 밀려난 무기력과 파편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양 여성작가에게 시대적, 문화적, 지역적, 사회적 간극이 무척 큰 이 당돌한 역작과의 조우는 어떤 형태로든 연구해볼만 한 가치가 있었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마저 구태가 되어버려 낭만이 몹시도 필요한 작금의 고국시민들과 공유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당위했다. 시작과 달리 중도에 고국으로 귀국하게 되어 급작스러운 의미의 변화가 생기기는 했지만, 이것은 결국 나의 독일 견문록 혹은, 정확한 작가이자 개인으로서의 좌표찍기행위에 비견될 수 있겠다.

독일에서 체류하던 3년여의 시간은 현지의 잡지를 파편적으로 배열하여 상징화 하였고, 직전 7년의 미국생활은 신대륙의 가볍고 열정적인 문화를 상징하는 만화적 이미지들을 마지막 레이어로 따와서 구성하였다. 뒤러의 오마쥬이기도 한 이 작업의 귀결은 결국 화가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고 전달의 형식이 시각적, 조형적 형태를 띄고 있으며 다른 표현 매체로는 대체될 수 없는 저만의 체화된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중동의 성경이야기와 이탈리아의 풍성한 인물표현, 독일의 지역풍경들이 뒤러의 뛰어난 구성력으로 재탄생한 당대의 블록버스터 원화를 바탕으로 하여, 나를 위한 구성을 구조적 레이어로 올리고 또 나를 포함한 다양한 층위의 동시대를 흩뿌려 담고자 하였다.

조형의 모든 요소도 정보의 원소들로 치환될 수 있다. 현대인인 나와 우리는 정보의 원소를 끊임없이 포개는 방식을 통하여, 과잉 정보들이 직조해낸 무작위의 매핑을 분석은 뒤로 미룬 채, 즉자적이며 즉흥적으로만 받아들이는 듯하다. 어린시절부터 질병처럼 느껴지던, 정보를 직렬로 꿰지 못하고 병렬로만 나열하며 습득하던 나의 증상들이 요즈음은 시대의 징후처럼 진단되어진다.

이러한 정보의 배열과 편집방식이 솔직한 나의 체험이자 모양이며, 이 새로운 시리즈에 구현된 난삽한 구성형식이 굳이 말하자면 나의 추출된 조형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한 구성속에는 백과사전처럼 다양한 항목들의 지점들을 잇고자 하는 나의 노력이 들어있다. 이런 정보와 오류의 범람속에서도 우리 모두는 꿈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매끈하고 아름답고 유려한 진리의 세계, 이데아의 세계를 꿈꾸며 그 곳에 다다르고자 하는 열망 같은 것, 그것이 영원한 점근적 접근일 뿐 궁극의 접점에는 다다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해하고 수렴해보려 노력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시리즈를 포함하여 나에게 예술 활동이란, 그 형식이 어떠한 모양으로 변화하든 간에, 영원히 지속되는 애잔한 노력의 집합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경미